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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행사

2026년 국립중앙박물관 - 금속세공 전시실

by Yeonwoo8310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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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타일랜드]를 보러 온 김에 실로 오랜만에 금속세공 전시실을 들렀습니다.

우리 역사 속 반지들...

누금 세공(granulation)이 참 아름답네요.

이게...

뭐였더라...근대 유물이었던 거 같은데...

회중시계줄이었던가?

설명문을 안 찍었네요...

 

아무튼 이 사진의 초점은 체인입니다.

전시실이 어두워서 흔들렸나 보네요...이런...

한가로운 풍경을 새겨놓은 장식 메달.

이 메달에 새겨진 건 꽃이네요.

한가지 재미있는 게 있다면

체인 끝을 처리한 방식입니다.

체인에 쓴 고리선을 그대로 큰 고리에 걸었어요.

이건 약그릇이라네요.

고려시대 거라고 합니다.

저 올록볼록한 건 타출기법을 쓴 거겠죠.

그 옆은 조각일 거고, 가장 오른쪽 유물은 아마 같은 타출 기법이 아닐지...

왼쪽은 은으로 만든 상자(합)이고,

오른쪽은 금으로 만든 상자(합)라고 합니다.

저 뚜껑...어떻게 만드는 건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더 정확히, 자세히 알고 싶다!!!

같은 형태라도 만드는 방법은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겉은 주물 아니면 타출 기법, 안쪽은 누금 세공이네요!

저 안쪽 촉감은 어떨까요?

오래 차고 있으면 손목에 오돌도돌하게 무늬가 새겨질 것 같습니다.

속이 비어 있네요.

하긴, 저게 통짜라면 무게도 무게지만 휘어짐 같은 변형에 취약해집니다.

'구조'를 이루는 쪽이 더 내구성이 높아지죠.

이게 설명이 '무늬를 붙인 거울'이었습니다.

재질이 청동, 금, 은, 래커(옻?)인 걸로 보아,

아마도 저 동물과 꽃, 기하학적 무늬들은 얇은 판으로 만든 금과 은을 톱질하여 모양을 따낸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옻칠 같은 걸로 붙이고 고정시켜 연마를 한 듯 합니다.

같은 기법, 다른 무늬의 유물이네요.

이게 조선시대 화장품 그릇이라는데...

모양이 상당히...

서양 건축 구조를 닮은 것 같습니다.

이건 확실히 동양적이네요.
표면에 가득한 오돌토돌한 건 아마도 일일이 정으로 찍어서 만든, 점묘법일 겁니다.

소름 끼치네요...오와 열을 맞춰서 몇 시간이고 점을 하나씩 쳐서 저 면적을 채웠을 걸 생각하면...

이건 재밌는데, 소꿉도구들입니다.

다 은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화로, 호리병, 가마솥, 물동이, 함박, 뒤주, 세발 화로 등 다양하네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친 '합'들입니다.

아마 위아래로 열고 닫으며, 경첩이 없고 넙적한 용기를 '합'이라고 부를 겁니다.

이게 아마...바탕이 철이고 거기에 은과 금을 박아넣은(입사) 유물일 겁니다.

대단합니다...

이것도 철제 화로에 은을 입사해넣은 겁니다.

...이거 다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그리고 이거, 말장식이라는데...

(옆에 종도 아름답네요.)

어떻게 끼우는 거지...
뭔가 끈 같은 것의 끝부분을 말아넣어 마무리하는 꼭다리인 걸까요?

어무튼 문양이 아름답습니다.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이라는데...

'여지'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천 허리띠에 꿰매 붙이거나 천 허리띠를 통과시켜서 사용했을 것 같은데,

그냥 통과시키기만 하면 저 장식들의 간격이 유지되지 않으니,

저는 꿰매 붙이고 세탁할 때 떼고, 다시 바느질해 붙여서 썼다는 데 걸겠습니다.

'여지'라는 게 뭔가 뚱뚱한 옥수수 같은 저 열매인가 보네요.

어라, 가죽끈이었네요?

그럼 어떻게...아니, 가죽도 꿰멜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허리띠 장식들이 많았습니다.

보기는 좋은데 무게가 아주...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허리띠 고리...그러니까....버클?

공작 무늬라고 하네요.

...일단 저 공작을 비롯해 입체적인 구성 요소들을...

현대라면 왁스, 즉 밀랍으로 깎아서 만듭니다.

역시 밀랍으로 액자 같은 격자도 만든 뒤에...

공작과 꽃다발과 난간 같은 구성 요소들을 합체시켜야 합니다.

따로 따로 만들지 않으면 입체적으로 깎기가 매우 어려울 테니까요...

근데 또 옛날이니 한 방에 저렇게 깎아냈을지도...

 

아무튼.

 

요즘이라면 이 뒤에 고무 가다를 떠서 똑같은 걸 여러번 생산할 수 있게 했겠지만,

옛날에는 그런 게 없으니 아마 원형을 하나 깎으면 그걸로 주물을 하나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천왕무늬라고 하는데...고려 시대인 걸로 보아 아마도 불교의 천왕이겠죠?

은입사연적...

전에는 왜 물 따르는 도구를 저렇게 물 담기 어렵게 만들었나 했는데,

그건 현대에 들어와서 수도꼭지가 생겨서 이해하지 못했던 거였습니다.

연적이란 물건은 시냇가나 우물 두레박 같은 것에 풍덩 담가서 물을 담는 것이더군요.

이건 필통...

문진도 있습니다.

휴대용 먹통이라고 합니다.

아마 숟가락 같은 부분의 뚜껑을 젖히면 그 자리에 먹이 들어 있는 거겠죠.

그리고 드디어 본 반가사유상 전시실.
제가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사유의 방이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입니다.

두근두근.

오오오.

확실히 압도적입니다.

넓은 공간에, 천장에는 무한을 의미하는 기호가 별자리처럼 떠있고

그 아래, 두 개의 '사유'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왕 있는 공간이니 빙 둘러보았는데...

어라, 저기...뒤통수에 뭔가가 꽂혀 계시는데요...

광배를 꽂아 거는 막대일까요?

구멍이 있는 걸로 보아 처음 있던 자리에서 앞으로 엎어지지 않게 고정용 줄을 걸었던 부위일까요?

설명이 없어서 궁금증은 풀지 못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가지 사유상...

이 전시실이 막 열었을 때에는 두 사유상을 마주 보는 자리에 의자가 있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런 건 없었습니다. 기억이 잘 못 됐나?

하지만 아무도 없는 전시실에서 두 사유상을 마주하고 앉아 보고 싶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만의 방을 가진 유물이 하나 더 있죠.

바로 손기정 선수께서 기증한 청동 투구입니다.

무려 기원 전 6세기의 국보를 넘어서 세계급 유물이 여기 오기까지 정말로 우여곡절이 많았죠.

전시실 앞에는 실감 나는 체험과 편의를 위하여 이렇게 만질 수 있는 실물 크기 복제품이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투구실로 들어갑니다.
반가사유상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꽤 큽니다.

투구 옆쪽을 찍은 사진이 사라졌는데, 이 투구가 앞뒤로 상당히 깁니다.

조금 과장해서 에일리언 머리 같아요.

전시실을 나와서 걷는데, 현대의 마법 거울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작동을 안 하고 있었지만,

아이디어가 정말 좋습니다.

이게 조선의 마법 거울이지.

병풍도 마법 병풍입니다.

이거 좋다...

아이디어가 진짜 좋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장료는 없지만
퇴장료가 있습니다.
자로 된 북마크라니...!!

아니, 이것도 이쁘네...

아니, 전자책으로 옮겨가서 이제 종이책 거의 안 보는데 이런 게 나와버리면 어쩝니까!

끝에 갓장식이 달린 볼펜은 예전에 산 적이 있는데...

아니, 국새 장식이라니!!! 사고 싶잖아!!!

결국 기념품점에서 몇 가지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근데 사진 어디 갔니....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VR 체험실이 생겼더군요.
사전예약제라서 못 봤지만 입구쪽 공간 정도는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 친화적인 탁자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리얼로 고양이를 위한 탁자...

집에 갖다놓으면 정말 좋아하겠다.

그리고 나오면서 운 좋게도 사물놀이 공연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좋네요.

 

하지만 사물놀이를 볼 때마다 저는 어릴 때 길에서 봤던 사물놀이가 생각납니다.

 

제가 봤던 사물놀이패는 인원은 저 사진의 절반도 안 되었습니다.

꽹과리를 치며 놀이패를 이끄는 대장이 있었는데,

이 분의 머리끈...(검색 중)...상모의 '채'는 그 분 키의 세 배가 넘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하지만 그 '채'는 그 분이 가만히 서 있을 때에도 땅에 닿는 법이 없었습니다.

다리를 풍차처럼 돌리면서 사람들이 둘러싼 공터를 바람처럼 몰아치는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태권도의 540도 돌려차기와 비슷했달까요...

 

그 뒤로는 사물놀이를 볼 때마다 왜 그 분 같은 기술을 펼치는 사람이 없는지 의아했습니다만...

생애 처음 본 사물놀이가 최고 수준의 공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공연을 다시 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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