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분을 소개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잔느 투생.
까르띠에의 표범(Panther)입니다.

생몰연도는 1887년에서 1976년입니다.
본래는 벨기에 태생으로, 레이스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샬롯이라는 언니와 함께 딸만 둘인 집이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형제자매가 다섯이었다는 기사도 있네요. 어느쪽을 믿어야 할지...ㅠㅠ)
그리고 독일인 새아버지가 들어왔지만 두 자매를 학대했고, 그들은 결국 집을 나가기로 합니다.

당시 잔느가 의지한 것은 징집을 피해서 브뤼셀로 도피해있던 어느 프랑스 귀족(Pierre de Quinsonas)이었습니다.
이 귀족은 잔느와 결혼하고 싶어서 1909년에 잔느를 파리로 데려왔지만 가문의 허락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잔느에게 파리 시내에 아파트도 마련해주고, 파리 사교계에 그녀를 소개했습니다.
여기에서 잔느는 코코 샤넬, 조지 바르비에(삽화가), 루이 까르띠에 등 사교계의 여러 인물을 알게 됩니다.


특히나 루이 까르띠에는 잔느 투생의 안목과 센스에 감탄하게 되고,
1913년에 액세서리 부서에 직원으로 고용했습니다.
1918년에는 까르띠에의 은제품 담당 부서의 부장으로 승진,
1920년에 부유층을 위해 디자인한 핸드백이 성공을 거두었고,
1933년에 루이 까르띠에는 그때까지 오직 혼자서만 쥐고 있던 하이 주얼리 디자인의 전권을 잔느 투생에게 맡겼습니다.
20세기 초,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겪고 있는 시대에 잔느 투생은 주얼리 업계에서 까르띠에라는 큰 회사의 하이 주얼리 부서의 실권을 쥔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잔느 투생은 2차 세계 대전 중 루이 까르띠에가 1942년 미국으로 가서 죽을 때에도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루이 까르띠에가 지지해주지 않아도 하이 주얼리 부서의 장 자리를 지킬 실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루이 까르띠에는 잔느 투생이 처음 그녀를 파리로 데려온 귀족과 헤어지고 난 뒤에 깊이 사귀었지만 역시 집안 반대로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잔느 투생과 결혼한 것은 프랑스의 실업가 피에르 엘리 도이셀로,
파리에 온 초기에 알게 되었고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해 결국 1954년에 결혼했습니다.

잔느 투생은 아파트 전체에 표범 가죽을 늘어놓고 표범 모피 코트를 입는 등 오랫동안 표범에 매료되었고,
루이 까르띠에는 이런 잔느 투생을 "마이 리틀 소다팝 표범"이라 불렀습니다.
이런 표범 집착은 잔느 투생의 디자인에도 반영되어 1914년의 손목시계를 시작으로 점차로 주얼리와 액세서리로 확대되었습니다.

잔느 투생은 시곗줄을 가죽이나 그로그랭 직물이 아닌, 금사슬로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내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 금속 시계줄의 조상은 잔느 투생이 되는 셈입니다.



1940년 대에 잔느 투생의 디자인 경향은 아르 데코에서 3차원 조각으로 바뀌어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오닉스로 만든 표범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1948년에는 윈저 공작 부인(영국 폐왕세자와 세기의 사랑으로 유명한 심프슨 부인)을 위해 여러 점을 제작하였고, 이것이 유럽과 북미 지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표범 외에도 플라밍고, 사자, 극락조, 잠자리 등 여러 동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잔느 투생의 또 다른 주얼리 모티브는 무굴 제국과 인도의 마하라자입니다.


1955년, 잔느 투생은 주얼리와 디자인 업계에 쌓은 업적을 인정 받아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1968년, 이미 반쯤 은퇴 상태였던 잔느 투생은 유명 여배우 마리아 펠릭스를 위한 사실적인 뱀 주얼리를 위한 정교한 부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70년에 까르띠에에서 완전히 은퇴했고, 1976년에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특출난 감각, 새로운 아이디어, 휘하 세공사들을 들들 볶아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게 만드는 추진력, 몸 담은 업계에 전설을 써내려가고 나이가 들어서도 무뎌지지 않은 능력에 남다른 성격까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악마는 프라다 영화의 모티브, 안나 윈투어의 조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참고 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Jeanne_Toussaint
Jeanne Toussaint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Belgian-born French jeweler (1887–1976) Portrait of Jeanne Toussaint by César Helleu Portrait of Jeanne Toussaint by Adolph de Meyer (1920) Jeanne Toussaint (French pronunciation: [ʒan tusɛ̃]; 1887–1976) was a
en.wikipedia.org
How Jeanne Toussaint Inspired and Popularized the Iconic Cartier Panthère
From muse to mastermind—learn how Jeanne Toussaint shaped the Cartier Panthère into a global symbol of luxury and independence.
www.sothebys.com
https://www.luismiguelhoward.com/journal/cartiers-wild-side-jeanne-toussaint-and-panthers
CARTIER'S WILD SIDE: JEANNE TOUSSAINT AND PANTHERS — Luis Miguel Howard
When we think of firmly established luxury houses and their signature pieces (Hermes and the Kelly bag, Saint Laurent and Le Smoking, Louis Vuitton and luggage), they have become so ubiquitous that we tend to forget how revolutionary they were in their own
www.luismiguelhoward.com
Highlighting Women Makers: Jeanne Toussaint and Cartier's Preeminent Jewels
“It’s completely Toussaint’s influence of course—she is the inspiration of us all.” -- David Webb Among the brilliant personalities who contributed to the rise of Cartier, Jeanne Toussaint remains the most intriguing and least understood figure
www.macklowegallery.com
Jeanne Toussaint — The Panther of Cartier
Jeanne Toussaint (1887 – 1978), the inimitable “Panther” of Cartier Jewelry, was one of the driving forces in jewelry styles in the early and mid 20th Century. During her time as director of fine jewelry, she was responsible for the creation of some
www.belado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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