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알아본 주얼러는 아직 생존해 있는, 포브스 피셜 우리 시대의 파베르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 드디어 기다리던 차례가 왔네요.
이 주얼러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브랜드 네임은 J. A. R.로 약칭이며 이하 '자르'라고 칭하겠습니다.
풀어 쓰면 조엘 아서 로젠탈 (Joel Arthur Rosenthal)로 본인 이름입니다.
개인사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고 하더니
위키에는 그럭저럭 나와 있네요.
1943년 생으로 미국 브롱크스 태생입니다.
엇,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군요. 24년 기준으로 81세..
하버드에서 예술사와 철학을 전공하고, 1966년에 졸업한 뒤에는 파리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각본가로 시작했지만 얼마 후에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원문에는 니들 스티치(needle-stitcher)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네요.
뜨개질(knitting)이랑 다른 건가? 자수(embroidery)? 아니면 실과 바늘로 하는 모든 공예의 통칭?
아무튼 이때부터 비범했는지 독특한 색의 실을 다루면서 에르메스와 발렌티노 등을 고객으로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석을 위한 받침대를 의뢰 받으면서 주얼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주얼리를 독학으로 공부한 자르는 1977년 방돔 광장에 간판 없는 가게를 냅니다.
지금도 방돔 광장에 있습니다.
방돔 광장은 세계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이 반드시 자리를 잡는 곳인데
그 방돔 광장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이 바로 자르입니다.
간판도 없고 쇼윈도우도 없고
가게 내부를 보여주지도 않고
문틀에 그저 이름 석자, J. A. R만 써있다고 하죠.
아는 사람이 아니면 거기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주소는 방돔 광장 7번지 (7 Pl. Vendome)라는데...구글맵으로 찾아봐도 철창살로 막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자르에 대해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을 말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실한 것과 뜬소문이 뒤섞여서 신뢰도가 높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자르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각종 SNS는 물론 온갖 매체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광고를 합니다.
시즌마다 나온 상품이라든가 해당 브랜드의 시그니처 디자인 등을 알리죠.
연예인, 인플루언서, 셀러브리티, 운동선수 등 모델을 기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J.A.R의 광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안 하거든요.
자르는 인터뷰도 안 합니다.
세상 모든 사업자가 자신과 자기 브랜드를 알리지 못해서 안달하는데
자르는 마케팅의 '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르에 방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넘쳐납니다.
이런 자르에 손님으로 들어가려면 기존 고객의 소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연줄이 있어도 명성이 없으면 고객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간다고 해도 제품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제품이 없거든요. 'ㅅ'
자르의 고객은 대기 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약한 순서대로 제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약하고 한 달 뒤에 부름을 받을지 5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르 마음이죠.
심지어 고객은 디자인 선택권도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같은 것도 랜덤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고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자르의 대기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자르에서 연락이 오면, 나오는 작품을 본 뒤에 살 지 말 지를 결정합니다.
그야말로 배짱 오브 배짱 장사!
(쩌, 쩐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르의 대기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고 하고
몇 년이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감수하며
자르가 부르면 전용기를 타고 득달 같이 달려간다고 합니다.
자르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단 한 명의 고객에게 맞춰서 제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브랜드가,
한 명의 고객을 위해서,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해당 고객에게 어울리는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같은 제품을 두 번 다시 만들지 않은 채,
고객에게 헌정할까요.
물론 명품 브랜드마다 단 하나만 나오는 작품들이 있기는 한데,
그런 건 고객쪽에서 주문 제작을 넣거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격상시키기 위한 게 대부분이죠.
당연히 이 제품들은 해당 브랜드의 전시관이나 매체를 통해 널리 널리 알려집니다.
그리고 다운그레이드 양산형을 만들어서 많이 많이 팔려고 하죠.
즉, 단 한 명의 고객만을 위해서 최고급으로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공표'하지도 않고
오직 고객에게만 헌정하며,
이런 방식만을 고수하는 곳을
저는 자르 말고는 알지 못합니다.
자르는 그야말로
'당신만을 위한 단 하나의 주얼리'를
말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극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고,
대량생산 없이,
유일무이한 디자인의 제품을 단 하나만 제작하다보니
자르가 1년에 생산하는 제품의 개수는 7, 80개 정도...많아봤자 100개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5.8 ~ 8.3 개 생산...한 주에 많아봤자 한 개에서 두 개...)
자르가 문을 연 게 1977년, 지금이 2024년인데...
이 글을 쓰면서 검색했을 때 은퇴했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햇수로 따지면 47년 정도?
첫 해부터 매년 100개씩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판매한 제품 수는 4700개네요.
많아 보이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47년 동안 판매한 갯수라고 하기에는 심각하게 적은 수입니다.
하지만 양산형 제품도 아니고 4700개가 전부 다 다른 디자인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많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주일에 신제품 디자인을 2개씩 쭉쭉 뽑아낸다?)
그리고 제품을 따로 공표하는 일 없이 오로지 고객에게만 보여주다보니
해당 고객이 '이게 바로 자르에서 산 거'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은 자르의 작품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알려진 자르의 작품은 추정되는 생산 갯수에 비해서 별로 없습니다.
또한 자르의 작품은 하이엔드 주얼리들의 중고마켓, 크리스티 경매장 같은 곳에 잘 풀리질 않습니다.
그만큼 고객들이 자르의 작품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평생 지니고 갈 소장품으로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2013년, 자르는 뉴욕 M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전시회를 연 최초의 현대 주얼러가 되었습니다.
이때 전시된 자르의 주얼리들은 모두 자르의 제품을 소장한 사람들이 자르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여해주었습니다.
마케팅을 안 하는 자르가 이런 걸 열었나? 싶어서 확인해보니
전시회를 연 주최측은 역시 자르가 아니었습니다.
전시 목록을 보면 395점의 주얼리가 나와 있는데
모두 다 다른 디자인의 다른 제품입니다.
https://www.gia.edu/gia-news-research-jewels-by-jar-exhibition
2023년에는 "윌리엄 골드버그"라는 다이아몬드 브랜드를 소유한 골드버그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자르의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왔는데,
출품된 갯수가 무려 역대 최대라는!!!
25개였습니다...
자르는 윌리엄 골드버그와 오랜 친구여서 골드버그 가족과 깊은 유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자르 주얼리 수가 유독 많았던 것 같네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자르 작품들을 보시겠습니다.
자르에 대해 조사하면서 사진을 모아보니 이게 자르 거였어? 하고 놀라게 되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튤립 브로치.
인터넷에서 종종 보기는 했는데 자르 건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업 방침 외에 자르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이렇게 파베 세팅을 한 섬세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전 주얼러 포스팅에서 나온 신디 차오의 '보석 튀김' 전에 자르가 있었던 셈이죠.
신디 차오의 작품이 표면이 울퉁불퉁한 '튀김'이라면
자르의 작품은 섬세한 형태를 유지한 채 표면만 보석으로 바뀐 '빌로드' 느낌입니다.
루비, 다이아몬드, 핑크 사파이어, 가넷 등 붉은 계열의 보석을 여러 종류 썼군요.
지금 카메라로는 붉은색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데,
실제 육안으로 보면 붉은색의 그라데이션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합니다.
치자꽃 귀걸이
저도 치자꽃 좋아합니다...향기가 정말 맑죠...
재질은 아게이트와 다이아몬드(어디에?), 플래티넘이라고 하네요.
찾았습니다. 뒷면 사진.
또 다른 치자꽃 브로치
패럿 튤립 팔찌
패럿 튤립 브로치
다이아몬드를 겹겹이 늘어뜨린 목걸이는 드물지 않은 편인데
아래에 늘어뜨린 세 개가 형태가 독특하네요.
볼더 오팔과 옥을 사용한...잠자리? 나비입니다.
금침수정(루틸 쿼츠)
오팔과 에메랄드 반지군요.
오팔이 아주 좋아보입니다. /흡족
오렌지 껍질 브로치 (2001)
양귀비꽃
양귀비꽃 브로치 1998 (왼쪽 위)
파이어 오팔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팬지꽃 목걸이 (중앙 아래)
비단벌레 등껍질 귀걸이.
이 귀걸이도 유명한데, 자르 건지는 몰랐네요...
우리나라야 뭐, 천마총 유물로 익숙하다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 귀걸이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순간 다이아몬드인가 했는데...
가운데를 뚫어놓은 걸 보니 수정 같군요.
얼음구슬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지...
본래 의도는 꽃이 아닐까 싶은데...사진으로는 그다지 꽃처럼 보이진 않네요.
이건 제가 알기로 은을 흑색 처리하고 그 위에 보석을 세팅한 걸 겁니다.
이 눈알...어쩐지 낯이 익네요...
크윽, 어쩐지 두통이!!! (또라이 달리)
다시 보니 달리와는 좀 다릅니다.
아무튼 이 눈알 반지(?)도 유명합니다.
근데 이것도 자르 건 지 몰랐어요...
이 눈알 디자인도 한때 엄청 유행했던 것 같은데...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참 팔찌인데...중간에 도토리 같은 거랑 말린 오디 같이 생긴 거는 재질이 뭔지 궁금하네요.
아니, 이 파가 자르 거였어?
저 얼룩말은 줄무늬 아게이트를 조각한 것입니다.
단순한 회오리 무늬인데
양쪽이 서로 반대되니 오묘해보이네요.
손수건 같은 귀걸이...
여기에 들어간 여러 보석 중에 파이어 오팔이 있다고 하네요.
저는 뭐가 파이어 오팔인지 알 것 같습니다. ㅋㅋ
근데 이 귀걸이...크기가 얼마나 되는 거지?
개당 지름 1.5 mm 스톤이라면 19줄 x 1.5 mm + 사이 간격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30 mm 이상이네요.
넉넉하게 보면 약 40 mm 정도?
매우 큰 귀걸이입니다.
무와 당근 귀걸이.
당근은 역시 파이어 오팔을 세팅했습니다.
하나 하나가 개성적이고
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네요.
모티브도 다양하고...
좀 의아한 것들이 있기는 한데,
자르의 작품은 한 명의 고객을 위한 것이므로
분명 실제 그 사람의 이미지에 가장 어울린다고 자르가 판단하였을 겁니다.
고객의 취향이나 가치관 같은 걸 파악하고
그걸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할 것 같네요.
자르가 내놓은 결과물을 별로 안 좋아한 고객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타율은 꽤 높은 것 같습니다.
이 전시회에 나온 390여 개의 작품을 여기에 다 올리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자르의 작품이 폭넓은 스타일을 망라한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시간 날 때 혼자 한두 개씩 찾아서 구경하려 합니다.
자르가 이렇게 폐쇄적이고
고객에게 선택권을 거의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면서도
오랜 세월 방돔 광장에서 자리를 지키며
주얼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데에는
고객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만들어낸
다채로운 작품들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곳이 또 존재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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